요즘 참 책에서 거리가 다소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뭐랄까... 못 보고 쌓여가는 책에 대한 압박감이랄까... 시간이 부족하달까...
이리저리 치여살고 있긴 하지만 시간 부족은 어디까지나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살 책은 꼭 사야 했고 그러한 결과로 내 옆에 존재하는 책들은 쌓여갔다.
이것저것 잡아봐도 손에 책이 잘 잡히지 않았달까나...

그러던 중에 책장 넘어가는것이 아깝게 본 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키리사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물묘사 ★★★
정황묘사 ★★★★
구성력 ★★★★☆
난이도 ★★★☆
문장력 ★★★★☆
진실성 ★★☆
일러스트 ★★★★☆
흡인력 ★★★★☆
개그도 ★
감동 ★★
액션 ★★★
캐릭터 ★★★★
어필 ★★★
분량 ★★★☆



구매 Lv : 9/10
필독!

일러스트서 꽂혀버렸으니... (먼산..)

키리사키?
살인마 잭(Jack the Ripper) 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소설등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고..
별칭인지 번역을 그렇게 했는지 간혹 면도날 잭이라고 쓰인 곳도 눈에 띈다.
이것이 일본어로 "키리사키잭"이라 한단다...

『키리사키』와 키리사키
본문에는 두 종류의 키리사키가 나온다. 분명 일본어의 한자로는 분명 다른 키리사키인데...
이름으로 뭔가 해보려는 작가의 의도처럼 보이지는 않는가?
분명 중요한 포인트이다. 유념하면서 읽도록 하자.
또한 이것은 연쇄살인범 『키리사키』와 키리사키 이즈미나 키리사키 히토미를
구별하기 쉽게 해줄 수 있는 작가의 작은 배려일지도?
이렇게 읽으면서 애초에 누가 키리사키고 키리사키가 몇 명인지 슬슬 머리가 복잡해지겠지.

나는 죽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시작하는 작품이...
음... 금방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 이런식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연재소설이라던가...
그다지 좋게 읽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거 아니려니 했다.
하지만 더 읽어나가면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글이란걸 단박에 깨닫게 되었으니...

냉철한 TS
트랜스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남녀가 서로 바뀌는...
그런 계열을 속칭 트랜스물이라고 한다. (꼭 남-여일 필요는... ;;)
<선배와 나>같은 러브 코메디(?)도 아니고... 이것은 상당히 미스터리 소설축에 가까운...
그러니까 읽으려면 머리를 나름 굴리면서 읽어야 재미가 배가되는 소설이다.

요로코롬한 책에 트랜스 요소라... 정말 끌리지 않을 수가 없는..?!
아흙.. 상상만 해도 즐거운 것이 아닐까? 막연하게 동경하던 것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남자로 되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질 수 (가져본적)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것을 정말 냉철하게 잘 풀어내고 있다.
주인공이 여자의 몸이 되어 불편하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전개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할 부분이기도 하다.

부제가 단정적
이 책의 특징이라하면 특징인 것이... 부제가 상당히 단정적이라는 것이다.
서장의 그것만 하더라도 나는 죽었다라던가 뒤에 여러가지로 나오는 것들..
나는 키리사키였다라던가 나는 키리사키다 등등...
자세히 살펴보면 부제는 각각의 장의 첫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이 갖는 효과는... 직접 느껴보기를 바란다.
부제만으로도 이렇게나 놀라운 흡인력을 가질 수 있음을 체험할 수가 있을 것이다.

대략적인 내용전개는...
'나'는 『키리사키』에게 살해당한 누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마약을 팔고 있었다는 누나에 대한 오명을 정화하기 위해
또 다른(?) 『키리사키』가 된다. '나'는 『키리사키』로서 죽었지만
키리사키 이즈미라는 소녀의 몸에서 살아나게 되었고 키리사키 이즈미에게는
키리사키 히토미라는 언니(누나?)가 있다. '나'는 『키리사키』였던 '나' 몸을 찾기 위해서...
(후략)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

독특한 세계관
또 하나의 매력은 좋은 책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스터리 소설에 세계관이 있으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할 지 모르지만
일단 죽었다 살아나서 트랜스되는 작품이니 만큼 죽음에 대한 것이나 인식의 문제,
그리고 상대적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진지하고도 색다른 고찰이 담겨있다.
이것이 내용이나 반전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공의 경계>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모순점도 존재하리라 보지만...
그런 세계관은 그것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무엇보다 따지고 들면 이 책의 진정한 재미가 반감된다.

우연은 필연이 되어 돌아오고...
키리사키는 키리사키이지만 또한 키리사키가 아니며 키리사키이기도 하고,
키리사키가 아니었던 자는 키리사키가 아니지만 또한 키리사키이기도 하며,
키리사키였던 자는 키리사키가 아니지만 또한 키리사키이기도 하다.
위에 알쏭달쏭하고 정신없는 길고도 짧은 한 문장이
내가 이 책을 가장 정확하고 누설없이 표현할 수 있는 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흠... 내가 썼지만 너무 잘 썼는걸?!  <--- 야 !!

멋들어진 구성과 좁혀들어오는 수사의 손길은...
수사... 미스터리 소설, 추리소설에서 경찰이나 탐정이 갖는 역할이겠지만.
이것은 어찌보면 범죄자(?)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수사의 손길은 역시나 달갑지 않은 법.
그런 구성을 잘 활용했으니... 이 사람에 대한 내용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런것이 아니고 이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었다던가.

아... 치명적인 내용누설이 될 수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

하지만 정말로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범인을 예측하면서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여기서는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향의 내용전개를 생각하며 읽을 수가 있었다.
이것은 아예 범인(?)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은 물론 아니지만..
그만큼 더 긴박감에 젖어서 볼 수가 있게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일 수록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작품일 수록 자꾸 이야기하고 싶은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나 자꾸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이니 설명하는 것이 치명적인 작품이지 하면서도
그렇게나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이 간만에 손에 잡혔기에 잡소리가 참 길어졌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직접 읽어보고 그 충격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7.06.09. 22:45
라피
posted by 라피